동네의 작업실 근처 작은 카페는 참 재밌는 곳이다.
내가 공간쉐어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 1층 근처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젊은 사장님이 엄청나게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한편, 사람도 대부분 테이크아웃을 해서 간단히 업무나 작업을 하기에 좋아서 가끔 들리다가, 최근에 블랜디드 원두를 바꿨다고 하시더니 커피도 맛있어져서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간혹 이 카페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인근의 “블록체인 기반 게임 개발사” 로 보이는데.. 그들의 대화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 할때가 많아서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될때가 많다.
나도 연초에 본의 아니게 NFT 프로젝트에 저작권을 강탈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NFT 창작자분들과 교류하고자 했고, 이를 기반으로 2달 정도 짧게 NFT 관련 웹3 회사와도 인연을 맺고 업무를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해당 분야에 대한 짧은 경험과 나의 생각 나아가 우려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주니어 레벨의 개발자 및 기획자들의 열띤 토론은 나에게 꽤나 흥미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대부분의 주제는 최근의 IT 세상에서 꽤 무게감 있게 다루어지는 분야를 아우른다. 본업인 Web3 기반의 P2E ( Play to Earn ) 게임은 물론이고, 최근 많은 침체를 보여준 블록체인 분야에 대한 전방위적인 걱정과 생각, 그리고 나아가 메타버스 분야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현시대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꿈 많은 컨텐츠 분야 직장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것 같다.
물론, 허락 받지 않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되지만.. 작은 카페에서 목청을 높여가며 시끄럽게 떠드니.. 최신의 노이즈 캔슬링으로 나만의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 놓아도, 침범되어 내가 들을 수 밖에 없다. (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를 떠날 순 없잖아?)
작은 카페에서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떠드는 그들을 보며 어쩌지 못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그냥 씨익 웃으며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등을 돌려 최대한 “나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어쩔 수 없이 흥미롭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곤한다.
그런데 몇일전, 좀 많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도 혼자서 여유롭게 카페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2명이 카페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또 어김없이 아주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니.. 귀에 쏙쏙 들려오는 이야기..
키워드나 내용을 들어보니 바로 또 그회사다.
그래서 원치않게 그들의 이야기를 강제로 경청(?)하게 되었는데..
이럴수가.
오늘은 주니어들이 아닌, 그들의 대장과 퇴사를 선언한 주니어 서버 개발자의 대화였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요약하자면 주니어 직원은 VR 분야로 이직을 희망하였고, 대표는 계속 왜 나가려고 하는지 불만 사항을 이야기 하라는 평행선에 서 있는 것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많은 쓸데없는 이야기 끝에 주니어 직원은 ” 연봉도 적고.. ” 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대표는 그때부터 직원을 비난하면서 ” 니가 일을 그렇게 하는데 돈을 더 줄순 없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이었다.
물론, 나는 이시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 그럼 그냥 잘가라고 응원 해주면 되지 않나? ‘
하지만 대표는 그때부터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급 발진하면서, 맹비난과 깎아내림을 시작했다. 바로 먼저 VR 분야는 전망이 없고, 거의 망한 분야고 자기가 6~7년전에 오큘러스 기기를 써봤는데, 최악이었다고, 거긴 망할꺼라고 그 분야에 도전하는 니가 너무 멍청하고 불쌍해서 자기가 내버려둘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시전했다.
갑자기 급 흥미진진해지면서 그의 논리를 계속 들어봤는데..
” 오큘러스 사는 결국 페이스북에 인수되지 않았냐, 대기업도 아니고 일개 소셜 기업에 인수된게 결국 그 끝이다. 반면에 블록체인은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위메이드 코인을 봐라, 시총만 해도 이미 글로벌 대기업들을 다 넘어서고있다. 이렇게 돈도 많이벌고 가치가 하늘 끝에 닿아있는 회사에서 너처럼 일 못하는 애를, 조금이나마 돈을 주면서 일을 해주게 하고 있는데, 어떻게 니가 여길 나가서 비전도 없고, 망할꺼라고 보이는 VR 분야에 뛰어들어서 일을 하려고 하냐..
물론, 네가 나의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는 레벨은 아니지만.. 내가 착해서.. 너를 그대로 냅둘수가 없다. 뭐, 그렇다고해도 니가 정~~ 원한다면 하고싶은걸 해야겠지만.. 아무리봐도 그선택은 아니다. 너무 멍청한 선택 아니냐. 나는 정말 아는 것도 많고 해본것도 많아서 너의 그 멍청한 선택을 그냥 볼수가없어서 너랑 이야기를 하는거다.
나는 절대로 너가 필요해서, 너를 붙잡으려고 이러는게 아니다. 그냥 나는 이런걸 냅두질 못하는 사람이다. 너의 그 멍청한 판단을 못참겠다. 왜 거기로가냐 차라리 대기업을 가라. 근데 대기업도 미래가 없는거 알지? 블록체인봐라 시작한 4~5년 밖에 안된 회사들도 시총으로 대기업들 다 제쳤다.
난 니가 이해가 안된다. “
오우야..
물론 당시에 실시간으로 내가 해당 이야기들을 녹음하거나 적고 있던것 아니라서 내 기억에 의존해서 다시쓰고, 약간의 각색이 들어갈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너무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뱉어내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의자를 돌리고 앉아서 오지랖을 제대로 부리면서 이야기에 끼어들어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박살내고 주니어 직원에게 “도망쳐.”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십번은 있었던 것 같다.
뭐, 근데 내가 끼어드는건 당연히 말도 안되고..
그밖에도 계속 타 분야에 대한 비난과 해당 직원의 어리석음을 강하게 강조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과 요지는 빙빙 돌리면서 이야기를 안했는데..
한참동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직원이 조금씩 맞장구도 치고, 입을 열기 시작하자.. 자신의 진심을 살짝 내비치기 시작했다.
“물론, 네가 너의 연봉에 불만족스러울 수 있어.
근데 나는? 나는 너네들이 일도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돈 값도 못하지만, 블록체인 분야를 사랑하고 내가 이 분야에 이바지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내 사재를 끌어다가 너네 돈을 주고 있잖아?
너네는 돈을 받지만, 난 그냥 돈을 주고있어.
그래, 물론 우리가 매출도 아직 명확하지 않고 큰 돈을 벌고 있지 못하지만, 대신에 코인을 주잖아. XXX코인 ( 아마도 그회사의 코인인듯 ) 이 지금은 아무가치가 없어 보여도, 지금 만들고있는 P2E 게임만 나오면 말도안되는 가치로 뛸꺼야.
너네 XXX 게임 알지? 그거 얼마나 뛰었어? 지금 나는 너네에게 그냥 부자가될 길을 주고 있는거야. 그런데 그걸 어떻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나한테 일을 그렇게 하면서 연봉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
그렇다. 해당 직원이 요청하는 연봉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거의 30분이 넘게 해당 직원과 다른 사업분야, 다른 회사들에 대한 엄청 난 비난을 하였던 것 같다.
그냥 원하는 연봉 못 맞춰준다고 하면 자신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으로 비춰보여서 일까? 어쨌든 길고긴 이야기의 끝은.. 네가 원하는대로 연봉은 못주지만, 계속 다녀라 였다.
게임 개발을 해보거나 관련 회사를 다녀보면서 서버 관련 기능을 활용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해당 팀에서 서버 개발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동시에 퇴사나 탈주한다면 대체자를 뽑기나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하실 것이다.
아마도 그 회사는 적은 연봉과 미래를 알수 없는 회사의 코인으로 직원들의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지친 서버 개발자가 퇴사 및 이직 의사를 밝히자, 강한 비난으로 그에게 상처를 주고, 동시에 자신만이 옳고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위성을 상대방에게 납득 할 수 있도록 말로 퉁 치려는 것 같았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해당 주니어 직원은 마음이 여리고 착했거나, 아니면 정말 그 회사에 애정이 남아있어서 였는지, 아니면 대표의 가스라이팅 화술이 효과를 보여서였을까? 직원은 다시 고민을 해보겠다는 대표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잘해보자 하면서 카페를 빠져나갔다..
우리는 살면서 잘못을 할때도 있고, 그로 인해서 관계가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다.
하지만 ,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고, 쌓아온 것이 남들에 비해서 많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 용기를 내기를 어려워 하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 상대방이 정말 핵심을 찌르는 내용을 말할때, 이를 통해서 ‘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인정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더 화를 내고 더 광범위한 비난을 하면서 동시에 ‘나는 틀리지 않았어..’ 라는 자기 보호 본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제 3자 입장에서 보던 나도 과거에 그런 적이 있었고, 동시에 3인칭 관점에서 보니 얼마나 추하고 머저리 같은지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회사가 어디인지, 주니어가 어떻게 됐는지, 모든 기술 기업과 특히 VR, 그리고 얼마전 신제품을 냈던 META 의 비전까지 모두 맹비난을 하면서 블록체인 사업이 이세상 모든 사업보다 뛰어나고 최고로 가치가 있다고 믿으시는 아직은 수익을 내고 있지 못한 그 회사의 대표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날 나에게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는 깨달음을 준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하고 살아야겠다.